중국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역인 우루무치와 투루판, 커라마이 등지를 지난 8월 1일부터 9일까지 다녀왔다. 당초 계획은 1일 우루무치에 도착해서 2일부터 텐산天山산맥 서쪽으로 이동해 나라티Nalati 대초원Grassland과 베이인불룩Bayinbuluke 대초원, 이닝Yining 등의 도시와 초원을 살펴본 뒤, 북쪽으로 올라가 부얼진에서 일행들은 카자흐스탄과 접경 도시인 허무까지 이동하고 혼자 우루무치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텐산산맥의 웅장한 모습과 산맥으로 둘러싸인 중국에서 두 번째로 넓고 큰 광활한 초원을 즐기는 일정이었다. 그런
무등산만큼 하나의 산에 다양한 이름을 가진 산도 드물다. 무등산, 무돌, 무당산, 무정산, 무진악, 무악, 무덤산, 서석산 등이 전부 무등산을 가리킨다. 어떻게 이런 다양한 지명을 가지게 됐을까? 이름은 모두 사연과 유래가 있기 마련이다. 전부 설명하려면 책 한 권쯤 써도 되지 않을까 싶다. 산신과 관련한 부분만 간단히 살펴보자. 산신은 역사서에도 나오지만 필히 설화나 전설과 같이 등장한다. 역시 조선 왕조 이성계와 관련된 설화가 있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전에 전국의 명산을 다니며 두루 산신기도를 올린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
피은 제8 낭지승운 보현수(朗智乘雲 普賢樹)조에 영축산이란 지명과 영축산 산신이 역사적으로 처음 등장한다. 역사서에 기록된 전설 같은 이야기다.‘영축산(靈鷲山)에 이상한 승려가 있었다. 지통이라는 상좌승이 있었는데, 까마귀가 와서 울며 말했다. “영축산으로 가서 낭지의 제자가 되라.” 지통은 그 말을 듣고 이 산을 찾아가 골의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데, 문득 이상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이 말했다. “나는 보현대사인데, 너에게 계품(戒品)을 주려고 한다.” 이에 계를 주고 나자 그는 사라졌다. 그러자 지
홍콩, 아시아의 서구 도시다. 100여 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중국으로 반환된 지 올해로 정확히 20년. 그런데 홍콩이란 지명이 언제, 어떻게 유래했는지 궁금하다. 홍콩의 한자는 향항(香港). 홍콩과 향항?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다. 지명과 장소가 관련 없으면 분명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다. 홍콩은 원래 이름 없는 섬이었다. 고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유적은 나오지만 기록에는 한나라부터 정착했다고 전한다. 원래 있던 광둥성 사람들과 대륙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혼재해 살았다. 광둥성 사람들의 발음은 베트남어 억양과 비슷하게 들린다
태백산은 우리 역사 초기부터 등장한다. 최초 역사서 신라 일성이사금조에 ‘일성이사금 5년(138) 겨울 10월에 북쪽으로 순행하여 몸소 태백산(太白山)에 제사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같은 책 권32 잡지 제사조에 ‘3산·5악 이하 전국의 명산·대천을 나눠 대사·중사·소사(大祀·中祀·小祀)로 한다’는 기록이 나온다.대사 3산은 첫째가 내력(奈歷 습비산:지금의 낭산), 둘째 골화(骨火: 경주의 금강산), 셋째 혈례(穴禮: 청도 오리산)다. 오악은 동악 토함산, 서악은 백제 지역이었던 계룡산, 남악 지리산, 북악은 고
대구 팔공산은 신라 삼산오악 중 중악이다. 오악은 통일신라가 각 지역의 대표적인 명산을 지정해서 국가적인 제사를 왕이 직접 주관해서 지내던 곳이다. 신라는 통일 전 수도 경주를 중심으로 삼산과 왕경오악이라는 형태로 산악숭배신앙을 가졌다. 통일 이후 신문왕대에 이르러 중국의 호국신의 개념인 오악까지 수용, 삼산오악제도를 국가체제로 정비한다. 와 에 이같은 기록이 그대로 전한다. 산악숭배신앙이 바로 산신으로 나타나는 호국신이며, 산신에게 지내던 산신제는 아직까지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매년 3월 12일 전후해서 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의 전통 신앙인 산신(山神)숭배를 적절히 이용했다. 이같은 사실은 역사적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른바 대사·중사·소사에 따른 삼산오악제도다. 삼산오악제도를 실시한 시기는 대체적으로 문무왕(재위 661~681년)대로 보고 있으나 일부는 신문왕(재위 681~692년)대로 파악하기도 한다. 통일신라의 삼산오악제도는 고려에 이어 조선까지 유사한 제도로 계승되고, 현재까지도 대부분 명산·명소로 거론되는 장소들이다. 권32 잡지 제사편에 ‘
그리스신화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신들은 언제부터 활동했으며, 인간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했을까? 간혹 인간과 신이 뒤섞인 조각과 그림이 나온다. 이 또한 어떻게 해서 나온 모습일까? 신과 인간은 위계가 없는 동격이었을까?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에 가면 갖게 되는 의문점들이다. 그리스에서 제일 큰 섬 크레타에는 사람 몸에 소의 얼굴을 한 반인반우(半人半牛)의 형상을 한 조각과 그림이 있다. 다른 어떤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형상과 그림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무엇을 상징할까? 내용을 담고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리스의 역사와 신화는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산에서 시작한다. 천신의 아들 환인이 환웅을 태백산으로 내려 보내 곰에서 인간으로 화한 웅녀를 만나 낳은 아들이 단군이다. 단군은 신시로 내려와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인간세상을 다스렸다고 단군신화는 전한다. 그리스신화가 시작되는 올림푸스산(Olympus·2,917m)은 그리스 반도의 북쪽에 있고, 그곳이 모든 신들의 거처였다. 올림푸스산만큼이나 자주 언급되는 그 남쪽의 파르나소스산(Parnassos·2,200m)에 있는 델피신전은 하늘의 뜻을 받드는 신탁(神託·oracle)의 장소였다.
1653년(조선 효종 4) 제주 목사 이원진이 과 을 참고해서 편찬한 에 한라산을 소개한 글이 있다.‘한라산은 제주도 중앙에 흘립(屹立: 우뚝 솟은)한 해발 1,950m의 고산이라. 한라라 운(云)함은 운한(雲漢)을 가(可)히 라인(拏引: 붙잡아 끌어당김)할 수 있다는 숭고한 그 웅자(雄姿)를 표현하는 형용사이요. 일(一)은 두무악(頭無岳)이라 칭하니, 봉봉(峰峰)이 다 요함(凹陷:오목하게 들어감)한다는 것이요. 일(一)은 원산(圓山)이라 칭하니, 산형이 궁(穹)하고 원(圓)하다는 것이요. 일(一
2015년 1월 31일 중국 오악을 취재하기 위해 가장 위도가 낮은 남악 형산(1,300.2m)으로 향했다. 형산 입구에 도착한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추운 겨울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정상 축융봉(祝融峰)에 오르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한국에서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산에 오르는 인파보다 훨씬 많았다. 모두의 손에는 어김없이 향을 들고 있었다.짙은 운무에 한 번 더 놀랐다. 별로 높지도 않은 산인데 짙게 내려앉은 운무는 한치 앞을 못 보게 했다. 가시거리는 10m도 채 안 되
경주 남산을 마주보고 있는 선도산에 지난 2009년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불길은 능선을 타고 순식간에 온 산으로 번졌다. 번지는 불길을 뻔히 보고서도 속수무책이었다. 오히려 인명사고까지 날 뻔한 위험한 상황이었다. 선도산을 다 태우고 하루 만에 겨우 진화됐다. 바람이 조금 더 세게 불었다면 자칫 바로 앞에 있는 남산으로 옮겨 붙을 기세였다. 불이 붙은 솔방울이 수십m를 날아다니며 불을 옮겼다. 다행히 남산까지 확산되지는 않았다. 산불원인은 성묘. 성묘를 마친 뒤 묘소에서 고인의 옷을 태우면서 발화됐다. 지금 선도산뿐만 아니라 남산
2016년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섰다. 65세 이상 인구가 7%를 넘어선 지난 2000년 이미 고령화사회로 진입했다. 2018년에는 14.3%로 고령사회로 들어선다. 이어 2026년에는 20.8%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예정이다. 이른바 너도나도 노인이고 본격 100세 시대의 도래다. 100세 시대엔 어떻게 건강을 유지해야 할까? 단연 자연 속에서의 걷기와 등산이다. 걷기와 등산이 노년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한번 살펴보자.100세 시대엔 ‘9988234’가 필수다. 99세까지 건강(팔팔)하게 살다
태백산이 세 번째 시도 만에 빠르면 4월 중 최종 공식 행정절차인 국립공원위원회를 열어 국립공원으로 지정 고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태백산은 1999년 4월과 2011년에 추진했으나 일부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특히 2011년엔 강원도가 중심이 돼 타당성조사 용역까지 마쳤지만 태백시와 시의회, 지역주민 등이 ‘경북 봉화지역 면적이 넓게 포함됐다’는 이유로 반발이 심해 전면 보류된 바 있다. 이번에도 지역주민들의 격렬한 반발이 있었지만 찬성주민들과 반대주민들을 함께 가장 최근에 지정된 무등산과 국내 최초로 지정
풍수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생태학자, 지형학자, 지질학자, 건축학자, 정원(庭園)학자, 산림학자, 정신분석의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동아시아풍수문화연구회 일행들은 발표를 마치고 이튿날 조선 8대 명당으로 꼽히는 전남 순창의 김극유(金克忸) 묘소로 향했다. 사회는 풍수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진삼 박사가 맡았다.김극유의 묘가 어떻게 조선 8대 명당이 됐을까? 우선 명당을 잡아 발복(發福)한 그의 가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극유(1436~1496)는 광산 김씨로서 조선 초기 문신으로 사간원(司諫院)의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했다
불암산둘레길은 서울둘레길의 한 구간이다. 서울둘레길은 서울시를 외곽으로 한 바퀴 걷는 길을 말한다. 총 8개 코스 157km로 연결된다. 산으로 이어진 숲길 85km, 마을길 40km, 하천길 32km로 구성돼 있다. 8개 코스 중 제1코스가 수락·불암산코스다. 총 14.3km에 보조구간 4.3km로 이뤄져 있다. 예상 소요시간은 총 6시간 30분. 보조구간은 2시간 10분. 여기서 수락산 구간을 제외하면 화랑대역에서 당고개역까지 7.8km가 된다. 서울둘레길을 조성한 서울시에서는 풍부한 산림과 경치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코스라
이란은 인류의 4대 문명 발상지는 아니지만 페르시아제국이라는 세계 최초로 세계제국을 건설한 국가다. 페르시아제국 이후 몇 개의 왕조를 거치지만 페르시아의 화려했던 고대문명의 명성을 잇기 위해 ‘페르시아’라는 명칭은 그대로 이어받았다. BC 6세기부터 AD 7세기까지 페르시아란 제국의 명칭은 계속되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번성했을 시기는 BC 5세기 전후 다리우스 대왕 때다. 지금의 인도 서부와 그리스 동부 일부와 이집트까지 점령한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란은 또한 세계 최초의 종교로 알려진 조로아스터교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제국
천하제일산(天下第一山), 오악독존(五嶽獨尊), 오악독종(五嶽獨宗), 오악지장(五嶽之長), 오악지수(五嶽之首), 대종(岱宗), 대산(岱山) 등….이들은 모두 하나의 산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바로 중국 오악 중의 지존으로 꼽히는 동악 태산(泰山·1,545m)이다. 동악 태산을 두고 역사학자들은 “서양에 올림푸스 산이 있다면, 동양엔 태산이 있다”고 말한다. 올림푸스산은 서양 문명의 발상지이자 신(神)들의 산이다. 온갖 역사와 신화의 원천이다. 무궁무진한 스토리가 쏟아져 나온다. 그러면 태산은 어떠한가? 중국 고고학자이자 고문자 전문가이
중국 4대 불교 성지 중 으뜸이며 세계 5대 불교 성지 중의 한 곳인 중국 오대산. 오대산은 우리나라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신라 자장율사가 오대산 태화지에서 목욕하며 문수보살을 친견한 것으로 유명하며, 또한 세계 최초의 여행기 을 쓴 혜초도 오대산에서 수행한 것으로 전한다. 중국인들은 “금의 오대산(金五臺), 은의 아미산(銀峨眉), 동의 보타산(銅普陀), 철의 구화산(鐵九華)”이라는 말로 중국 4대 불교명산의 순서를 매긴다. 보타산의 문수보살도 오대산에서 가져간 것이라고 전한다. 또한 네팔 룸비니 가든, 인도 녹야원